세종 이성(李城)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세종 이성(李城)은 6~7세기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 지역의 행정적·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1300여 년 전 역사의 숨결이 여전히 생생하게 전해내려오는 세종 이성을 살펴봤다.
고려 개국공신 이도가 머물렀던 산성
세종 이성(李城)은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의 이성산 정상부에 위치한 둘레 약 516m의 테뫼식 산성이다. 이성이라는 독특한 명칭은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가 머물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전의면에서는 이도와 관련된 설화와 유적이 현재까지 전해져 온다.
이도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금강에 도착했을 때 대홍수로 물이 범람하자 이도가 묘책을 찾아 태조와 군사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그의 원래 이름은 ‘치(齒)’였으나 태조로부터 노를 젓는다는 의미의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벼슬은 최고위급인 태사삼중대광에 이르렀으며,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전산은 전의의 옛 지명으로, 이후 이도를 비롯한 후손들이 이 지역에 대대로 거주하면서 본관을 전의로 하고 그 계보를 이어왔다.
교통 길목·방어 용이성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
이성은 이도가 성벽을 쌓았고 성 안에 그의 거쳐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이성의 위치와 둘레, 고려 태조의 공신 이도의 근거지였던 점 등이 비교적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성은 백제,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해왔다. 이는 이성산의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성산은 천안, 청주, 세종 중심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길목인데다 평야지대에 돌출된 독립 구릉의 형태로 사방을 조망하기에 유리해 천혜 요새의 입지를 갖췄다. 백제 수도였던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의 북방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써 막중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학술적 가치 커…
지역 정체성의 뿌리 역할 기대이성에서는 2020년부터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국내에서는 처음 발견된 백제시대 12각 다층 건물지를 비롯해 성내 다단식 석축시설, 대형 목곽고 등 다른 성곽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유구가 확인됐다. 최근에는 이성의 출입문 역할을 했던 동문지(東門址)의 실체가 확인됐고, 토축 성벽과 석축 성벽 구조가 함께 발견됐다.
고려의 개국공신 이도가 거처로 삼았다는 기록과 차별성 있는 유구 등 이성이 지닌 역사적·학술적 가치는 세종시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정립해나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 시 기념물 이성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대회 자료집